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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오락(四當五落)
윤중리 소설가/전 고등학교 교사
2012년 05월 21일(월) 15:22 [경산신문]
 
11월에 수능시험이 있고나면 고3 교실은 낙엽 진 산길보다 더 썰렁해진다. 한쪽 구석은 비어있고, 자리를 지키고 앉은 아이들조차도 그 열심히 하던 공부는 어디 가고 만화를 보거나 전화기를 주물럭거리거나 텔레비전을 켜 놓고 영화를 보거나 잡담으로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하거나 한다. 수능 성적이 나오는 12월 중순까지는 정말 지루하고 재미없는 시간이다. 그러다가 12월 말에 겨울방학이 시작되면 2학년 교실에 긴장감이 돌기 시작한다. 정식 진급을 하려면 아직 두 달도 더 남았지만 이미 반 편성까지 새로 해서 한 학년씩 실질적인 진급을 하게 된다.(물론 모든 학교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3학년을 맡게 된 교사들은 처음부터 공부하는 교실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1년 후에 좋은 결과를 가져와야 한다는 강박감에 싸여 첫 시간부터 진학지도의 노하우를 발휘한다. 그 노하우 중의 하나가 바로 ‘사당오락(四當五落)’이다. ‘하루에 잠을 네 시간 자면 합격하고 다섯 시간 자면 불합격한다’는 말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자본금이라는 서양 격언이 있지만,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하루에 24시간만 허락을 하셨다. 그러니 남보다 더 많이 공부하기 위해서는 잠자는 시간을 갉아먹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래서 고3 담임들은 이 ‘금언’을 소중히 여기고 급훈에다 포함시키기도 한다. 아이들도 진심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감히 반대 의견을 개진하지는 못한다. 더 많은 시간을 캐어낼 곳은 수면시간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40년에 가까운 긴 세월을 교사로 살아왔지만 고3 담임을 그리 오래 하지를 못했다. 말하자면 고3 담임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은 셈이다. 내가 고3을 담임하던 해에 우리 반 아이가 다른 반 아이로부터 흉기에 찔리는 사고도 있었고, 아이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반장을 갈아치운 일도 있으니 좋은 평가를 받을 수가 있었겠는가? 그런데 정작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은 이유는 바로 이 ‘사당오락’ 때문이었다. 고3 담임 첫 조회시간에 “사당오락이란 헛소리다. 공부를 잘하고 싶으면 잠을 많이 자라”고 선언을 해 버린 것이었다. 이건 아이들 입을 통해서 학교 안은 물론 학부모들의 귀에까지 들어가면서 말썽을 일으켰고, 교장실에 불려가서 꾸중도 들었다.

물론 내가 잠을 많이 자라고 한 것은 게으름 부리면서 공부해야 할 시간에도 잠을 자라는 것은 아니었고, 공부하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의 수면 시간을 확보해야 된다고 하는 말이었다. 6시간 이하의 수면으로는 다음날 정상적인 공부를 할 수 없으니 6시간 정도는 자고, 시험 기간에는 그럴 수 없으면 일요일이나 시험 끝난 후에 수면을 보충하라고 한 것이었다. 오히려 의사들은 그보다 더 많은 7, 8시간을 권고하고 있음을 보면 지금 생각해도 내 얘기는 옳은 것이었다. 잠 잘 것 다 자고 언제 공부하느냐는 항의성 얘기도 들었다. 내 대답은 깨어있는 시간을 알차게 활용하라는 것이었고.

내 생각이 옳았다는 걸 증명해 줄 만한 학생이 둘 있었다. 김 군과 신 군이다. 두 학생은 학년 초에 성적이 비슷하게 좋은 모범생이었다. 그러나 김 군은 수업시간에 자주 졸고 멍하게 정신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왜 늘 졸고 있느냐고 물으면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는 것이었다. 불쌍하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했다. 신 군은 정반대의 경우였다. 항상 눈망울이 초롱초롱 맑았고 생기가 넘쳤다. ‘넌 잠도 안 오니?’하고 물으면 “밤에 많이 잤어요” 하는 게 대답이었다. 대학진학 결과는 어땠을까? 대답 안 해도 독자들은 짐작하겠지만 신 군은 그해 서울대학교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고3 학생들이여, 사당오락은 헛소리다. 잠을 충분히 자라. 충분히는 못 자더라도 공부에 크게 지장이 없을 정도는 자라. 다만 깨어있는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알차게 활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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