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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좌천과 지방혐오
2018년 12월 10일(월) 11:17 [경산신문]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새로운 시민문화로 자리 잡은 청와대 청원 중에 상당 부분은 사법부의 판결과 관련된 것이어서 청와대가 답을 할 수도, 해서도 안 되는 청원들이 많다. 자칫 사법부 독립 침해라는 시비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청와대 청원이 꾸준히 이어지는 이유는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바닥을 뚫고 아예 시궁창으로 처박혀버린 탓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 법원과 법관들에 대한 역겨운 기억으로 가득 채워졌던 무술년 한 해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검찰에 불려나오는 모습으로 그 대미를 장식할 것 같다.

사법농단에 관련된 판사들은 평판사에서 대법관까지, 모든 직급에서 참 골고루도 섞여있기도 하고, 사법부 내부에서 그런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는 데도 양승태 대법원장의 재임기간 6년내내 거의 모든 판사들이 알면서도 떡 훔쳐먹다 들킨 도둑처럼 눈만 멀뚱거렸다는 것이 더 끔찍하다.“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한다는 말은 영혼 없는 법관들이 내지르는 입에 발린 소리임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로 썩은 내가 진동하리라고는 아무도 짐작조차 못했을 것이다. 전관예우 라든지, 유전무죄, 유권무죄 정도는 애교 수준이다.

법관 개개인은 독립된 헌법기관이기도 하고, 그들의 신분은 성지의 수도자 수준이라 할 정도로 법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판사들을 통제해왔다고는 하지만 대법원장이라고 해서 판사들을 함부로 파면시키거나 신분상의 불이익을 줄 수 없다. 음주운전으로 단속되든, 지하철에서 몰카를 찍다 현행범으로 체포가 되든, 오피스텔에서 성매매를 하다 적발이 되더라도 최고 정직 이상의 처벌을 받지 않는게 이 나라 판사들이다. 법원의 제식구 감싸기라서가 아니라 법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리고 판사는 재판 중인 사람으로부터 수백만원어치 공술을 얻어먹어도 재판에 직접 관여하지만 않으면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나라의 법원의 도덕률이다. 이런 판사들이 도대체, 왜 무엇이 두려워 사법부 수뇌부의 부당한 지시에 저항한 번 하지 못하고 납죽 엎드려 있었을까?

양승태 대법원장이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판사들을 통제할 수 있었던 무기는 ‘지방좌천’이었다. 파면은커녕 면직도 아니고, 직급 강등도 아니고 기껏 근무지 이동에 불과한 지방 발령에 온 나라 판사들이 몸서리를 치며 벌벌 떨었다는 것이다. 수도권 법원에서 근무하다 지방 법원으로 발령이 나면 판사가 판새가 되나? 그 지방이란 것도 전기도 수도시설도 없고, 버스도 다니지 않는 산골오지가 아니라 두 세 시간이면 자신들의 안식처인 서울에 닿을 수 있는 지방소도시 아닌가? 법원이 지리산 꼭대기에 있다거나 통통배로 몇 시간을 달려가야 하는 낙도에 설치되어 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사법농단에 관련된 판사 몇몇을 형사처벌한다거나 탄핵한다고 해서 지방에 대한 판 사들의 일반적인 정서가 바뀔 리는 없다. 사법농단에 관련된 대법관이 퇴임 후에 시골판사로 자원, 재임용되었다는 사실에 언론의 찬사가 쏟아진 것은 지방에 대한 엘리트 판사들의 정서를 증명하는 사례라고 할 수도 있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사법개혁에서 법관 인사제도에 대한 혁
명적인 개혁으로 수도권 법원과 지방법원에 대한 균형을 맞추지 않는다면 앞으로 지방차별에 이은 지방혐오가 승진에 목을 매고 사는 수도권 법관들에 의해 판결로 정당화되는 참담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김진국
신경과 전문의
gsinews@gs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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