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 기사쓰기 | 전체기사보기
교육 복지 여성 사건/사고 사회일반 행정 의정 정치일반 농업 생활경제 지역경제 경제일반 공연전시 생활정보 스포츠 문화일반 동정 경산사람 미담 독자마당 칼럼 사설 만평 시큰둥만화 시민기자 임당발굴 30주년 특별기획 경산미래농업, 해답을 찾다 지난 기획특집 바람직한 역사공원 조성 모델을 찾아서 도농교류, 농촌체험관광 지역살리는 협동조합 재래시장 탐방기 그림 그리는 의사 임종식의 경산이야기 지상인문학강의 경산인물열전 현방탐방 구술로 푸는 경산 100년사 일본 생협 슬로카페를 가다 현장탐방 경산 대표음식 특집 지역소식 경산 도시건축의 생애사 이제는 탈핵이다! 독서감상문대회 천작가의 it book, it movie 카드뉴스 쏙쏙뉴스 계남마을 시인의 농사편지 미디어 리터러시 (공동기획취재) 최승호의 뉴스브리핑
최종편집:2019-08-22 오전 11:41:35
전체기사
커뮤니티
공지사항
시민기자
뉴스 > 특집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경산의 대유학자 탁와 정기연 국한문 혼용 강조한 선각자”
나라얼연구소 설립 15주년 기념 특별학술강좌
2019년 07월 11일(목) 22:22 [경산신문]
 

↑↑ 탁와 정기연 선생의 문집을 소개하고 있는 조원경 나라얼연구소 이사장.
ⓒ 경산신문

경산의 대유학자 탁와 정기연 선생의 일생과 산문세계 등을 고찰하는 학술강좌가 지난 6일 무학산에서 열렸다.

이번 학술강연은 조상들이 물려준 고귀한 얼을 찾아내 미래를 지고 가야할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책무를 다하기 위해 설립된 (사)나라얼연구소(이사장 조원경, 소장 황영례)가 연구소 설립 15주년을 기념해 열렸다. 이날 근세 경산의 최고 유학자인 탁와 정기연 선생의 연보를 통해 선생의 일대기를 그린 조원경 이사장의 <탁와 정기연 선생의 발견>,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의 선임 연구원인 김유진 박사가 <탁와 정기연의 산문세계>를, 중앙일보 기자를 지낸 한의대 송의호 교수가 <나라 잃고 두 스승 순절을 지켜 본 탁와 정기연>을 발표했다.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해 전국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킨 하양 무학로교회 담임 목사이기도 한 조원경 이사장은 논문을 통해 탁와 정기연 선생이 일생동안 꿈꿨던 유토피아는 자신을 옥玉으로 태어나 평생 옥으로 살기를 원했다. 옥은 王에서 玉이 된다. 천자문에서 “玉出崑崗” 곤륜산에서 나오는 옥은 완벽完璧이며 결점 없는 완전함을 뜻한다. 탁와 선생의 출생지가 바로 옥곡동이다.

또한 선생이 남긴 11책 22권의 문집에 수록된 시와 서간은 오랑캐의 나라 일본에서 벗어남을 평생 소원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중화의 문화를 받은 우리나라는 소중화(小中華)의 옥으로써 어느 문물(일본 서양)에 더럽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탁와는 스승을 따라 애국의 삶을 최선으로 삼은 애국자이자 민족주의자였다고 밝혔다.

탁와 정기연은 1877년(丁丑)에 옥곡동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지해志海, 아버지는 동민東珉이었다. 아버지는 자녀들의 공부를 위해 온갖 힘을 다해 재산을 모았으며 수당 정화술 선생을 안음에서 오도록 하여 아들을 가르치게 하였다.

↑↑ 탁와가 거처한 우경재.
ⓒ 경산신문

탁와가 19살 때 아들에게 “斯文淵源之正未有若淵爺(지금 유교의 연원을 바르게 이어가는 자는 연재 송병선과 같은 분은 없다)”며 연재 선생에게 가서 공부하라고 명했다. 탁와 선생이 공부 할 수 있도록 어렸을 때부터 책을 모아 1000여권에 이르렀으며 탁와가 여러 곳의 스승을 만나거나 하면 모든 경비를 지출하였으며 집으로 찾아오는 학자들이 있으면 오래 머물 수 있도록 방에 선비들이 쓸 수 있는 모든 것을 준비해 두었다. 연재선생이 고종으로부터 시호를
받았을 때도 자신이 아파 아들이 가지 않으려 할 때 꾸짖으면서 그를 보내어 연재선생에게 모든 예를 다 갖춘 훌륭한 아버지이다.

1892년(壬辰)에 달성 徐氏와 혼인하고, 1894-95(甲-乙) 남천면 동학산動鶴山에 들어가 공부했다. 1896년(丙申): 가을 아버지의 명으로 송병순 병순 형제에게 가 공부했다.

1898년(戊戌): 10월 원계에 가서 선생의 조카 순헌 정헌純憲·廷憲과 중용·대학을 율곡 주석서 중심으로 배웠으며, 1903년(癸卯) 3월 22일 연재 선생이 경산 자택을 방문했다.

1904년(甲辰) 4월 할머니를 모시고 4-5개월간 자인 仁山의 美川에 거했으며, 1905년(乙巳) 12월 30일 연재 선생이 순절했다.

1933 년( 癸酉) 8 월 성암명 ‘聖巖銘’ 35자와 성암기聖巖記를 지었으며, 1934년(甲戌): 연재.심석제 두 선생의 향사 부탁을 받았으나 거절했다. 1935년(乙亥) 2월 누벽정‘棲碧亭’ 중수를 위해 통문을 돌리고, 5월에는 송자대전 복간에 든 비용을 갚을 수 있도록 통문을 돌렸다.

서벽정은 전라도 무주에 있는 연재 선생의 강학소이다.
1940년(庚辰) 옥곡동 삼의사三義士비갈을 세우고, 동암유고‘ 東巖遺事’를 편찬했다. 1941년(辛巳) 고산서당 당장 망첩을 받았으나 거절햇고, 1942년(壬午) 봄 14대 조고祖考 봉안문을 지었다.

1945년(乙酉) 7월 해방 소식을 듣고 희이불매喜而不寐라고 표현했으며, 1946년(丙戌) 봄 초계정씨 삼의사유허비를 옥곡동에 세우고 삼의정‘ 三義亭’ 지었다. 1946-7(丙丁) 한문폐지론에 대한 옥석문답‘ 玉石問答’을 지어 맹목적인 민족주의자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옥석문답은 한국의 문화의 뿌리를 중국에 두고 해방 후 한글 옹호론에 입각한 급진민족주의자들을 비판한 글이다. 한문은 우리의 사상을 깊이 하기 위한 표의 表意문자이므로‘ 玉’과 같은 것이고, 한글은 표음表音문자이므로‘ 돌’과 같다고 하였다.

1951년(辛卯) 12월 21일 병석에 누워, 이듬해 1952년(壬辰) 5월 세상을 떠났다.

조원경 이사장은 이번 학술세미나를 계기로 가능하면 탁와연구소를 두어 지속적인 연구활동이 필요함하다고 밝혔다. 또한 경산 근대유학자를 학문적으로 총정리하여 근대의 경산 학문 동향을 밝혀야 한다며 경산의 근대유학자 40여명을 열거했다. 탁와의 스승인 연재와 심석재의 학파에 속한 정통학자가 경북-대구지역에 얼마나 활동했으며 이들이 주장한 학설과 변용된 학설의 근거를 찾아내는 것도 앞으로 할 일이라고 말했다.

↑↑ (왼쪽부터)주제발표를 맡은 송의호, 김유진 교수. 탁와 후손인 정유열 박사
ⓒ 경산신문

김유진 박사는 <탁와 선생의 산문세계>를 통해 탁와 선생은 조선의 마지막 유자儒子, 한문학자로서 끝까지 은거한 사인(士人)으로서의 삶과 자세를 견지 했다고 밝혔다. 탁와집은 총 11책 24권으로 이 가운데 산문은“ 탁와집”권11에 집중되어 있다.

김 박사는 34세(1910년) 때 지은‘ 훼유변설’( 毁儒辨說), 둘째로 선생의 중년기라 할 44 세(1921 년) 때 지은 ‘이경전’( 二耕傳), 셋째로 선생의 노년기 혹은 말년이라 할 71세(1947년) 때 지은 ‘옥석문답’(玉石問答) 3권으로 그의 산문세계를 들여다 보았다.

김 박사는“ 각 작품의 시간적 상거가 10-20년 정도씩 차이가 나지만 탁와 선생은 대쪽같은 일관성을 보여준다”며 “개화와 국권피탈, 광복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대사의 역사적 굴곡을 몸으로 직접 겪는다면 으레 그에 맞추어 사상도 굴절을 겪게 마련이지만, 탁와 선생은 당신이 살았던 삶과 당신이 창작한 작품 사이에 간극이 없는 초지일관한 삶을 살았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탁와 선생이 그의 산문에서 보여준 장점은 첨예한 대립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논점을 포괄해 나간다는 점”이라며,“ ‘이경전’에서는 동경자와 서경자의 논쟁, 그리고 동쪽 사람들 내부의 분열을 잘 묘파했고‘, 옥석문답’에서는 노년에 접어든 선생의 실력이 한층 능란해진 모습을 보여주고, 여러 인물들을 가상으로 설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탁와 선생의 문학이 원숙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송의호 교수는“ 조선시대 유학자는 대부분 한글이 백성들 속으로 파고든 뒤에도 한자와 한문을 학문의 주된 언어로 사용했는데, 조선시대 선비들이 일상에서 한글을 실제로 어떻게 사용했는지 연구해 왔다”며“ 탁와 정기연 선생이 만든 <습례국>은 일제강점기 영남 유학자가 언문을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사례이며, 당대 어떤 유학자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한학을 깊이 공부하고 많은 저작을 남기면서도 한글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
다”고 밝혔다.

송 교수는“ 탁와는 망국과 두 스승의 순절, 일제강점기, 광복과 서구 문명의 유입이라는 변혁기를 숨 가쁘게 살았던 유학자였다”며 “<이경전(二耕傳)>이라는 글 등을 통해 시대가 변해도 유교의 도통(道統)을 이어 발전시키면 그것이 추구하는 이상향을 틀림없이 건설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간직한 선비로, 우리 것의 소중함을 실천하고 또 깨우쳤고 특히 유학자로서 한글을 한문과 함께 일찍이 받아들이며 혼용을 강조한 선각자였다”고 마무리했다.

이번 학술강좌에는 탁와 선생의 후손들인 초계정씨 경산종회 회원들과 지역 유림, 윤영조 전 시장과 정원기 전 교육위원, 서재건 전 문화원장, 이장식 부시장과 강수명 의장, 최재림 경북향교 문화발전협의회장과 경산도시자생위원 등이 무학산 상여집 아래 작은 강당을 가득 메웠다. 참가자들은 점심식사 후 옥곡동 우경재와 삼의정 등 탁와 선생의 손때가 묻은 유적지를 둘러보고 탁와 선생의 업적을 기렸다.

↑↑ 삼의정을 찾은 학술강좌 참가자들.
ⓒ 경산신문
최승호 기자  gsinews@gsinews.com
“경산신문은 경산사람을 봅니다. 경산사람은 경산신문을 봅니다.”
- Copyrights ⓒ경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경산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경산신문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죽음의 배려
"평산동 코발트광산의 진실을 알고 ..
삼성현초 학생자치회 ‘학교장 간담..
관봉(冠峯)에서 내려다 본 와촌 산..
현흥초 두루누리 도서관 여름 독서..
예견된 농산물가격 폭락, 대책은 없..
남부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어르신..
용성 곡신리 치매보듬마을 복숭아 ..
이동식 백자전시회
성장과 발전을 위한 규제완화

최신뉴스

하자경만평  
택시·환경 등 4개 현안 투쟁문화..  
논두렁연가  
전쟁(戰爭)과 다람쥐 2  
추석맞이 예초기 수리봉사 주민호..  
“TV쇼 진품명품” 출장감정 <..  
추석 앞두고도 생기 잃은 농민들  
방문  
경북도, 아동복지시설 해외봉사 지..  
경상북도 규제개선 아이디어 공모..  
경북콘텐츠진흥원 동남권센터 설립..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이 자치분권..  
경산소방서, 게이트 키퍼(Gate-Kee..  
경북도민생활체육대축전 자원봉사..  
하양읍, 특이민원 비상상황대비 모..  


인사말 연혁 사업영역 조직도 편집위원회 편집규약 윤리강령 윤리실천 요강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정책 광고/구독안내
상호: 경산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515-81-03551/ 주소: 경상북도 경산시 경안로 173(중방동) 2층 경산신문사 / 발행인.편집인: 최승호
mail: gsinews@gsinews.com / Tel: 053)815-6767 / Fax : 053)811-7889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다-1002호 / 등록일 : 2010.12.06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함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승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