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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학교
문학_삶과 사람의 무늬 <58>
2019년 07월 16일(화) 11:34 [경산신문]
 
“살려만 주신다면, 산만 내려갈 수 있도록 해주신다면…. 간절히 빌고 또 빌었습니다. 그러면 제가 히말라야를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고.” 세계 최초 히말라야 8,000m 16좌 등정에 성공한 산악인 엄홍길이 한 말이다. 네팔 히말라야에는 16개의 학교(휴먼스쿨)가 지어지고 있다. TV에서는 휴먼스쿨에 가기 위해 오지에 거주하는 아이들이 수 십리 먼 길을 걸어가는 장면이 방영되고 있다. 그는 배움에 목마른 각국의 어린이들에게 등불이 되고 있다. 세계 각처에서 몇 십리나 되는 학교에 가기 위해 강을 건너고 험준한 산을 넘는다. 배운다는 것은 그만큼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인 동시에 희망의 빛이다. 예나 지금이나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인 동시에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난생 처음 입원을 했다. 감기로 시작된 폐렴이 한 달 동안의 치료로도 낫지 않아서 일주일간 병원 신세를 지게 된 것이다. 입원 첫 날 입원 수속을 끝낸 아내가 돌아간 병실에는 링거액이 떨어지는 소리만 남았다. 온종일 주사기를 손목에 매달고 침대에서 독서로 시간을 보낸다. 지루해지면 5층 하늘정원이라고 이름 지어진 야외 휴게실 벤치에 앉아 밤하늘과 동무가 된다. 저 수많은 별처럼 결국 이 우주에서는 나 혼자다. 세균이 점령한 홀로 남은 빈껍데기 육신과 오롯이 친구가 된다. 몸살 기운과 심한 기침으로 느리게 가는 초침을 바라보는 일은 참을 수 있지만, 기침을 할 때마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은근히 걱정된다. 다른 병도 아닌 폐질환이 두 달째 이어지니 처음과는 달리 슬그머니 겁이 났다. 투병 중인 사람들은 결국 폐질환으로 죽어간다는 말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병가로 인해 다른 교사들에게 수업을 맡겨야 한다는 미안함 때문에 진득하게 쉬지 못하고 무리하게 출근한 결과가 병을 더 키우게 되었다. 늘 이렇듯 살아가면서 난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9인실에서 내가 제일 젊다. 이런 저런 병으로 인한 장기 입원환자가 대부분이었는데 그들 중에서 직장암 말기의 60대 중반인 남자와 벗이 되었다. 복도 의자에 앉아서 둘은 이런저런 이야기로 초침을 세곤 했다. 그는 한 때 자동차정비공장을 운영했던 경영주로 직장암 말기로 2년째 투병중이다. 모대학병원에서 1년 정도 암 치료를 했고 의사가 시키는 대로 암 치료를 했지만 결국은 상태가 더 심해졌다. 상태가 악화된 원인의 상당부분이 의사의 잘못된 진료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판단 이후 의사의 진료 행위에 대한 증거를 수집하였다. 진료 시의 녹음 파일, 여러 가지 의료 기록들을 모아서 이것으로 그 의사의 잘못된 의료행위에 대한 응징을 하리라고 마음먹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의사는 권위적이던 태도가 갑자기 공손해지기 시작했고, 방송 관계자는 증거 자료를 고액에 팔 것을 제안해 왔다. 그의 내적 갈등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 자료를 팔아서 의료분쟁의 소지를 일으킨 의사에게 보복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깨닫게 될 즈음, 병원에서는 더 이상 치료할 것이 없다고 그에게 퇴원을 종용했다. 그 길로 이곳으로 옮겨서 자신에게 남은 나머지 시간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치료 가능성도 없으면서 이런 저런 의료 행위를 강요하고, 환자 주머니가 바닥이 나면 쓰레기처럼 취급하는 병원의 행태를 고발하리라던 그는 그동안 숱한 갈등을 했고 많은 고심 끝에 그 자료를 파기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왈가불가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수용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하고 편안해지더란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고. 평소 건강검진을 빠트리지 말고 잘 하라고 그가 내게 당부한다. 숨 쉴 시간이 손톱만큼 남은 사람의 소중한 가르침이었다. 몸이 건강하지 못하면 마음마저 피폐해진다는 말을 절절하게 깨닫는다. 따지고 보면 입원을 하게 된 것은 순전히 내 탓이다. 매일 이어진 술자리와 과도한 취미활동으로 쉬지 않고 몸을 혹사한 결과이다. 건강검진 결과로 나온 콜레스테롤 과다 지방간이 있어서 조심하란 병원의 경고를 무시하고 삶의 물결을 거스른 것이다. 물리적 나이는 60대인데, 자각 나이를 40대로 여기고 몸을 과도하게 부려먹은 탓이다.

수 십리를 걸어 산 중턱에 있는 학교로 등교하는 히말라야 산악지대에 살고 있는 그 아이들처럼 나 또한 삶의 중반에 또 다른 인생학교에 온 것이다. 곧 삶의 황혼이 내게도 다가올 것이다. 서서히 쇠락해가는 몸을 이끌고 시들어가는 내 삶의 시계를 물끄러미 바라볼 날이 조금씩 다가올 것이라는 것을 안다. 인생학교에서 다 끝내지 못한 나머지 공부를 부단히 이어가야 하리라. 수도승이 된 듯 나머지 공부에 부단히 정진하면 예전처럼 건강한 몸으로 회복할 수도 있으리라. ‘살려만 주신다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삶의 해거름에서 무디어진 내 영혼을 깨우려는 듯 그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온다.

허남진

 
ⓒ 경산신문 

문예사조로 등단
한국문협 경산지부 수필분과장
경산수필 2대, 4대 회장 역임
현재 자인여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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